조선어학회 #7708737
Description
독립투사분들 감사합니다 우리의 자랑 스러운 한글을 댜찾아주셔 대단히 감사합니다 조선어학회 사건은 조선어학회사건 수난자동지회'의 기념사진. 뒷줄 좌측부터 민영욱, 임형규, 정인승, 정태진, 이석린이다. 가운데 줄 좌측부터 김선기, 백낙준, 장현식, 이병기, 정열모, 방종현, 김법린, 권승욱, 이강래이다. 앞줄 좌측부터 김윤경, 정세권, 안재홍, 최현배, 이중화, 장지영, 김양수, 신윤국이다. 한말에 일어났던 한글운동이 3·1운동 후 다시 일어나면서, 1921년 12월 뒤에 조선어학회로 이름을 고쳐 부르게 된 조선어연구회가 창립되었다. 1929년 10월에는 조선어사전편찬회가 조직되었다. 이로써 민족의 숙원이며, 문화민족의 공탑이요 민족정신의 수호인 사전을 만들기 위한 일이 시작되어, 사전 편찬의 바탕이 되는 「한글맞춤법통일안」·「표준어사정(標準語査定)」·「외래어표기」 등을 제정하는 등 말·글의 연구 및 정리, 보급을 계속하고 있었다. 한편, 일제는 1931년 만주사변을 일으킨 후 중국 침략을 목전에 두고 조선 민족에 대한 압박을 한층 더해갔다.1936년에 「조선사상범보호관찰령」을 공포한 후, 1937년에는 수양동우회(修養同友會) 회원을, 1938년에는 흥업구락부(興業俱樂部) 회원을 검거하였다. 또한, 조선민족사상을 꺾고 나아가 조선 민족을 말살하기 위해, 조선어 교육을 단계적으로 폐지하였다. 1941년에는 「조선사상범 예방구금령(朝鮮思想犯豫防拘禁令)」을 공포하여 독립운동가를 언제든지 검거할 수 있는 길을 터놓았다. 이처럼 일제 탄압이 숨막히게 조여들자 조선어학회는 사전의 편찬을 서둘러 1942년 4월에 그 일부를 대동출판사(大東出版社)에 넘겨 인쇄를 하게 되었다. 경과와 결과 이러한 시대적 배경 속에서 함흥영생고등여학교(咸興永生高等女學校) 학생 박영옥(朴英玉)이 기차 안에서 친구들과 한국말로 대화하다가 조선인 경찰관인 야스다(安田稔, 安正默)에게 발각되어 취조를 받게 된 사건이 벌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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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 Aug 2026, 12:27 | 3 | first reading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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